똘망이와 천혜향

아기는 분명 내 세상을 넓혀나간다. 덕분에 옷 쇼핑의 즐거움을 처음 느껴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운드북도 생겼다. 간을 안한 음식이 새삼 얼마나 맛없는지 놀라기도 하고, 새로운 치아가 뿅 하고 자라는 것만으로 너무나 기특한 것이 자식을 키우는 일이구나 깨닫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아기는 때때로 나의 세상을 좁혀버린다. 확 좁혀서 밀도를 촘촘하게 만든다. 그렇게 다른 이들을 나와 가까워지게 한다. 서로의 세상에서 그저 배경에 불과했을 당신과 나는, 아기자기하게 작아진 이 새로운 곳에서 정말이지 쉽게 친근해진다.

자주 가는 동네 김밥집의 사장님은 우리 아기의 눈이 똘망하다 하셨다. 그 후로 우리가 갈 때마다 똘망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좋아해 주신다. 오늘도 점심에 먹을 김밥을 한 줄 사러 갔는데, 똘망이 왔네. 하며 반기시는 그 모습에 김밥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날이 좋은 요즘은 아기띠를 하고 자주 산책을 나간다. 며칠 전 단지 내 놀이터를 지나쳤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들 셋이 그네를 타며 놀고 있었다. 한 아이가 아기다!를 외쳤고, 나는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옆에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나에게 닿으라는 듯한 큰 목소리였다. "아기가 천혜향 같아!"

그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천혜향같이 밝아!"

천혜향이라는 비유도, 과일과 밝음의 연관성도, 그 모든 작은 엉뚱함에 웃음이 터졌다. 더 자세한 이야기가 조금 궁금하기도 했지만, 노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인사를 하며 자리를 옮겼다.

그 상큼함을 곱씹으며 이유를 상상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일이 아니었을까? 떠올렸을 때 기분 좋은 단어를 붙여준 귀여운 마음이었을까? 시적이고 순수한 그 표현이 아름다워 남편에게 전했고, 남편은 다시 시댁 식구들에게 전했다.

서로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을 그 남자아이와 나는, 아기 덕분에 말을 나눴고 그 덕에 많은 사람이 웃으며 기쁨을 느꼈다. 이런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아기를 향해 웃긴 표정을 지어주는 사람들이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애써 딴청을 피운다. (나 역시 아기를 마주치면 괜히 웃겨주고 싶어 자주 했던 행동인데, 이제는 다른 입장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다른 부모님들과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 인사를 나눈다.

이 좁혀진 거리감은 아기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스쳐가는 배경에 불과했던 평면의 사람들과 나는, 작고 기분 좋은 온기를 나누는 입체로서의 우리가 된다. 나의 아기가 살아갈 세상이 따듯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지만, 이미 아기는 나의 세상마저 그렇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천혜향같이 밝게.

p.s. 

제가 좋아하는 사운드북은 어스본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영국의 아동 출판 브랜드인데 플랩북도 있고 팝업북도 있어요. 엄청나게 유명한 브랜드인데 그전에는 이름도 몰랐다는 게 새삼 신기하네요. 아기를 위해 각색된 소리가 아닌, 생생하게 높은 퀄리티의 소리가 가득하답니다. 겉 표지에 소리를 체험할 수 있는 버튼이 연결되어 있거든요. 나중에 서점에 갈 일이 생기시면 한 번 눌러보세요! 개인적으로 시끌벅적 정글 사운드북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