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그] 마찰의 필요, 그리고 포스트

얼굴 모르는 이름들에게 📮

2025. 7. 23.

지난번 소개 받은 노래 '여름아 부탁해' 이후,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노래가 줄줄이 소환되어 줄곧 듣고 있다. 2000년대 노래는 특히 극적이고 노래들이 많은데, 이 사람 아니면 죽는다는 애절한 가사들이 압권이다. 당시 미니홈피에도 그런 감성에 가득 찬 글들이 넘쳐나기도 했다. 요즘에는 그런 감정적이고 진지한 글을 오글거린다며 흑역사 취급을 한다. 극단적으로는 '감성충'처럼 벌레라는 어미를 붙여가며 조롱하기도 한다. 선비 소리를 듣는, 꽤 진지한 사람으로서 그리 반가운 단어는 아니다.

현시대에는 마찰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한다. 시각, 촉각, 후각 등 온갖 감각을 활용한 상호작용에서 마찰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마찰이 잦을수록 우리는 그 대상(사람 혹은 물건)의 정보를 알게 되고, 그만큼 관심을 두고 관계를 형성한다. 한편,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마찰이 사라졌다. 대상과의 접촉 없이 오로지 화면과의 상호작용으로 대상을 파악하게 된다. 매끄러운 스와이프에 마찰은 없고, 관계없이 정보만 얻게 되었다. 마찰 없는 대상은 한없이 가벼워지기에 이른다.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니, 이를 효율적으로 선별할 필요가 생긴다. 그 기준은 합리성이다. 밥 한 끼를 먹더라도 맛집을 검색해야 한다. 평점을 비교해 가며 가장 합리적인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조건과 성향이 맞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린다. 그렇게 모든 경험이 마찰 없이 매끄럽게 흘러간다. 매끄러움이 만든 편리와 효율은 우리가 실패하면 안 되게 만든다. 매끄럽지 못한 사람은 무능하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혐오한다. 그렇게 합리성이란 기준 아래 서로를 감시하고 억압한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나 또한 그런 매끄러운 사람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싶어서다. 온갖 제품을 다 찾고 비교하고 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리뷰가 적거나 낮은 식당은 가지 않는다. 길 가다 우연히 들어갈 리는 더더욱 없다. 특정 직군이나 외모, 나이에 묘한 경계심을 가진다. 내가 그들에 대해 얻은 정보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극적인 혐오 글뿐인데 말이다. 마찰이 두려워 자꾸 미끄러져 도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부끄러워졌다.

<마나 모아나> 전시에서 오세아니아 지역 원주민의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어두운 밤 횃불을 들며 형식없는 춤에 심취에 있었다. 그 장면은 가히 야성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원시 부족 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이런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노래와 춤 등으로 참여자들이 무아지경의 상태에 이르는 의식을 치르고 나면 갈등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에겐 이런 야성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조금씩, 마찰을 늘려보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 속으로 뛰어드는 일, 그리고 그 사람들을 함부로 라벨링 하지 않는 일. 온라인에서 제품을 비교하기보다, 매장에서 직접 만져가며 구매하는 일. 루틴에서 벗어난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일.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기업 지향적인 디자인보다, 내가 재밌어서 하고 싶은 작가 지향적인 프로젝트를 펼치는 일. 그런 불편하고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일들 말이다. 이런 부대낌이, 불편한 마찰이 나를, 우리를 더 조화롭게 만들지 기대해 본다.

2025.07.23 (수)

진지한 글을 진지하게 쓰며, 효그 보냄

p.s.

요즘 유행한다길래 ChatGPT에 'based on everything you know me roast me and don't hold back'이라고 물어봤어요. 고민이 많고 남 눈치를 많이 보며 지나치게 철학적이라는 등의 뼈 때리는 평가를 받아 슬펐지만, 나름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이런 게 저의 모습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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