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 개의 제품을 목록에서 하나씩 지워가며 나에 대해 깊이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안녕, 그리운 당신!

한동안 매일 같이 잘 들고 다니던 가방이 여기저기 낡아, 새 가방을 고르기 위해 요 며칠 쇼핑몰 사이트를 뒤적였어. 그런데 자주 쓰는 쇼핑몰에 들어가니 세상에나, 만 개도 넘는 가방이 있는 거야! 필터를 아무리 걸어 추려도 여전히 보이는 게 수백 개라 일단 마음에 드는 가방들을 무작정 ‘좋아요’에 저장해두고 그중에 골라보자, 마음먹었어.

며칠에 걸쳐 백 개가 조금 넘는 엄청난 ‘좋아요’ 목록을 만들고는 어제부터 목록에서 하나씩 찬찬히 다시 보며 지워나가기 시작했어. 처음엔 다 일단은 마음에 들어 담아 놓은 거라 비워가는 데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지만, 막상 시작하니 하나씩 지워가는 게 너무 쉬운 거야. 내가 여태까지 잘 써온 가방들을 떠올리며 비교하니, 내게 딱 맞았던 가방의 특징들이 하나둘씩 선명하게 생각나더라고. 

뚜껑이 잘 닫혀 소매치기 걱정이 없고, 무난히 다양한 옷에 어울리면서도 재밌는 포인트가 있는 디자인, 온갖 물건을 다 담아도 괜찮을 크기, 가벼운 무게, 그 외에도 끈 길이, 끈 모양, 비에 젖어도 괜찮은 내구성 등 꼭 필요한 조건이 점차 명확해졌어. 그 조건들이 모여 결국 ‘내가 밖에서 주로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어떤 것들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듯했어. 내 취향, 내가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가 적겠다 싶어 기분이 좋아지더라. 

좋아서 눌렀던 '좋아요'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듯, 한때 마음에 들었지만, 이제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놓아주는 일도 점점 쉬워지길 바라고 있어. 그리고 그렇게 하나씩 놓아주며 남겨진 선택이 이번에 고른 가방처럼 나와 꼭 맞아떨어지기를 기대해 보면서!

p.s. 

네덜란드에 이사 오고 나서부터는 주로 중고 의류 제품을 구매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저렴하고 질 좋은 새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기도 하고, 여름철 습기 때문에 제품에 손상이 쉽게 가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여기는 동네마다 중고 제품 가게가 꼭 있고, 벼룩시장이 여기저기서 열리는 등 중고 거래 시장이 워낙 활성화되어 있기도 하고, 중고 제품을 잘 골라 입으면 더 멋쟁이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어 자연스레 중고 시장으로 발길이 가더라고요. 중고 제품의 질이 요즘 새로 나오는 제품의 질보다 좋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여기에 대한 재밌는 영상을 공유합니다.😊) 이번 이야기 속 지난 3년간 잘 쓴 가방도, 이번에 고르고 고른 가방도 모두 중고 제품이에요. (둘 다 3만 원이 조금 안 되고요.😉) 저렴한 가격에 훨씬 더 다양한 디자인의 제품이 있다는 점과 보물찾기하듯 재밌다는 점에서 계속 중고 제품을 찾게 되네요.🥰 다음번에 필요한 제품이 있거든 당근 마켓을 한 번 켜보는 건 어떠세요? 숨은 보석을 발견할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