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에서 열심히 논 하루도, 평범히 출퇴근하는 하루도.

안녕, 그리운 당신!

며칠 전에 긴 하루를 보내고 피곤한 상태로 저녁을 먹다가, 문득 퇴근하고 내가 어떻게 집에 왔는지 생각해 보려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기차에서 내려 역을 나온 것까진 대충 알겠는데, 그다음에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온 과정이 희미해서, 마치 기차역에서 집까지 순간 이동한 기분이 들었어. 새삼 자전거가 지금 역에 있나 집에 있나 고민까지 했다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하루가 짧고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잖아. 언젠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우리 뇌는 반복되는 일에 대해선 굳이 기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 순간들이 빨리 감기처럼 지나가 버린다고 하더라고. 그렇다는 건, 앞으로의 출퇴근길도 이렇게 다 사라져 버리는 시간이 되는 걸까 싶어 괜히 아쉬워졌어.

그런데 또 재밌는 건, 그럼 아침에는 어땠지, 하고 떠올려보니까, 그날따라 출근길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거 있지. 무선이어폰 배터리가 다 나가서 오랜만에 노래 없이 자전거를 밟는데, 심심한 마음에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예뻤어. 갓 염색한 천처럼 파란 하늘에 몽글몽글 크고 예쁜 구름이 드문드문 떠다니는 게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예쁘다고 느꼈거든. 그러다 보니 얼마 전에 한 투어 손님이 ‘유럽 화가들이 그린 그림 속 하늘이 포토샵이 아니라 진짜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는 걸 유럽 와서 알았어요.’라고 한 말이 떠올랐어.

사실 나는 한국의 하늘이나 네덜란드의 하늘이나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아. (ChatGPT는 심지어 위도의 차이로 한국 하늘이 더 선명한 파란색으로 보일 확률이 높다고 하네.) 그런데도, 그분이 이곳에서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늘마저 사랑하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매 순간, 매 장면이 기억에 남을 긴 하루를 보내셨을 그 분이 부럽더라.

어떤 일은 더 의미 있고 어떤 일은 덜 의미 있고, 그렇게 나누면서 덜 중요하게 여긴 순간들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데. 무의식중에 그렇게 많은 기억을 놓아가며 살았구나, 새삼 깨닫게 되어 놀랐어. ‘작은 것들에도 의미를 갖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보다도 작고 큰 일을 섣불리 나누지 않고, 어떤 순간이든 온전히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오늘도 참 잘 보냈네.”라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꽉 찬 하루를 보내고 싶어졌네.😌

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