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걸지는 않았지만 손끝에 익어버린 일들

다 쓴 화장실 휴지를 갈기 위해 선반을 연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여분의 두루마리 휴지들이 가지런히 쌓여있다. 새삼 고마워진다. 하루는 그런 적이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해 주는 데, 열었던 현관문을 다시 닫고 집에 들어왔다. 냉장고 위쪽에 높게 자리 잡은 장을 열더니 휴지를 몇 개 꺼내고는 화장실에 채워두었다. 내가 해두면 된다고 말하자 '의자에 올라가야 하잖아.'라고 답하고는 서둘러 문을 나섰다. 의자에 올라가서 물건을 꺼내는 모습이 위험해 보였는지, 그럴 필요가 없도록 미리 채워두는 게 어느샌가부터 그의 일이 되어있었다.

손가락을 걸며 약속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렇게 서로를 위해 손끝에 익어버린 일들이 있다. 출근한 남편이 벗어둔 잠옷을 반듯하게 개어둔다. 샤워를 하느라 벗어두었을 때도 굳이 다시 주워 접은 뒤에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둔다. 시작은 아마, 집에서는 잘 정돈된 잠옷을 입고 편안히 쉴 수 있다는 기분을 주고 싶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나도 그냥 습관처럼 정리를 해둔다.

남편이 출근을 위해 문을 나서는 6시 10분쯤에는 꼭 같이 일어나 인사를 한다. 남편은 더 자라고 말을 하지만, 현관문을 나설 때 배웅을 해주고 들어설 때 맞아주는 가족이 있는 게 내가 생각하는 집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오늘 저녁에 퇴근하며 들어올 때도 환하게 맞아줄 생각이다. 그렇게 저녁을 함께 먹으며 잠시 대화를 하다 보면 야속하게도 금세 또 자야 할 시간이 다가오겠지. 그럼 남편은 매일 그렇듯 무거운 물통을 가득 채운 가습기를 방에 가져다 둘 것이다. 따듯한 수증기가 방을 가득 채우고, 서로의 손끝으로 채워간 너무나 평범한 하루가 그렇게 또 지나갈 것이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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