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머니카드를 잃어버리면 재발급비가 16,000원인 나라에서 열흘 동안 네 번 잃어버린 일에 대해서.

안녕, 그리운 당신!

이렇게 편지를 쓰려니 조금 어색하지만, 최근 나에게 황당한 일이 여럿 일어나서 꼭 소식을 전해 주고 싶었어. 아참, 나는 지금 네덜란드에 살고 있어. 너무 오랜만의 연락이라 몰랐지?

네덜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다르게 한국처럼 어딜 가나 현금 없이 카드만 쓰고, 교통카드 환승 시스템도 잘 되어있는 나라야. 버스, 지하철, 트램은 물론 기차까지 티머니카드 같은 OV-Chipkaart라는 교통카드를 찍고 탈 수 있어. 우리나라랑 똑같이 교통카드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지만 보통 회사에서 교통비를 지원받으려면 꼭 교통카드를 써야 해. 우리나라랑 다른 건 내 사진이 들어간 개인용 카드라 잃어버렸을 때 재발급 비용이 16,000원(11유로)이라는 점이야. 제법 비싸지? 근데 웬걸. 지난 4년간 한 번밖에 안 잃어버렸던 걸 올해 초에 귀신이라도 씌었는지 열흘 동안 네 번이나 잃어버렸지 뭐야. 작은 물건을 실수로 떨어뜨려 잃어버리는 건 살면서 수없이 겪는 사소한 일이지만, 이렇게나 연달아 겪는 건 정말이지 흔치 않은 경험이다 싶더라.

네덜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다르게 한국처럼 어딜 가나 현금 없이 카드만 쓰고, 교통카드 환승 시스템도 잘 되어있는 나라야. 버스, 지하철, 트램은 물론 기차까지 티머니카드 같은 OV-Chipkaart라는 교통카드를 찍고 탈 수 있어. 우리나라랑 똑같이 교통카드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지만 보통 회사에서 교통비를 지원받으려면 꼭 교통카드를 써야 해. 우리나라랑 다른 건 내 사진이 들어간 개인용 카드라 잃어버렸을 때 재발급 비용이 16,000원(11유로)이라는 점이야. 제법 비싸지? 근데 웬걸. 지난 4년간 한 번밖에 안 잃어버렸던 걸 올해 초에 귀신이라도 씌었는지 열흘 동안 네 번이나 잃어버렸지 뭐야. 작은 물건을 실수로 떨어뜨려 잃어버리는 건 살면서 수없이 겪는 사소한 일이지만, 이렇게나 연달아 겪는 건 정말이지 흔치 않은 경험이다 싶더라.

사건 1. 1월 15일 출근길.

출근길에 버스에서 잘 찍고 내렸는데 퇴근길에 버스를 타려니 교통카드가 주머니, 가방, 어디를 봐도 없는 거야. 회사에 두고 왔나 싶어서 다음 날 출근길에 길에도 회사에도 아무리 찾아봤는데 없더라고. 포기하고 재발급받으려고 교통카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용 내역을 보니 세상에! 지난 하루 동안 이미 누가 열심히 쓰고 다닌 거 있지! 어디 놀러 나갔는지 하룻밤 사이에 네 번이나 타고 내린 데다 아침에도 우리 회사 근처로 오며 쓴 거야. 버스에서 오다가다 마주친 사람 중 하나일 것 같아 범인을 잡아볼까도 했지만 이러다 교통비가 몇만 원씩 더 나올까 무서워서 야속한 마음을 뒤로하고 서둘러 카드를 정지하고 16,000원에 재발급 신청했어. 

사건 2. 1월 20일 버스 정류장.

토요일이라 여기저기 갈 곳이 많았는데 다행히 새로 신청한 교통카드가 마침 그날 아침에 도착해서 잘 쓰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러다 타야 할 버스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정류장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아차! 주머니에 있어야 할 교통카드가 또 없는 거야! 오는 길에 떨어트렸나 싶어 서둘러 정류장으로 달려가려니 저 멀리서 분홍 모자를 쓴 한 꼬마 아이가 바닥에서 뭘 줍고, 아빠한테 보여주는 게 보였어. 아빠가 버스 정류장 벤치를 가리키고 꼬마가 벤치에 조심스레 내려놓는 것까지 보았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가까이 가서 보니 내 카드더라고. 부녀에게 인사하고 싶어 돌아보니 벌써 저만치 가고 있어 마음속으로만 감사함을 전했어.

사건 3. 1월 21일 쇼핑몰.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며 이 가게 저 가게 메뉴판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어떤 안경 쓴 학생이 말을 거는 거야. 몇 발치 떨어진 데서 내 교통카드를 주웠다고 건네주더라고. 찾아준 학생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컸지만, 이 정도 되니 나 정신을 어디다 놓고 살고 있는 건가 싶어 걱정도 되더라.

사건 4. 1월 26일 잡화점.

정신 차리고 살자고 마음먹은 지 닷새. 퇴근길에 다이소 같은 잡화점에서 한껏 장보고 집에 가려는데 또 카드가 주머니에 없네? 발을 동동 구르며 잡화점을 두 바퀴째 돌고 있으니 한 직원이 무슨 일이냐고 먼저 묻더라. 교통카드를 잃어버렸다고 하니 다른 직원들에게도 물어봐 주고, 그래도 못 찾으니, 내 연락처를 두고 가라고 했어. 그날 집 가는 길에는 오만 생각이 다 드는 거야.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어디 문제가 있나? 같은 생각들 말이야. 근데 저녁쯤 되니 잡화점에서 전화가 딱! 마감 청소하다가 찾았다고 카운터에 둘 테니 편할 때 찾아가라고 연락이 왔어. 너무너무 고맙고 신나서 바로 답례용 초콜릿도 사두고 설레는 주말을 보냈지. 월요일에 퇴근하자마자 가려고 했는데, 점심때 한 번 더 연락이 왔어. 혹시라도 까먹지 말라고 전화했대. 넘치도록 고마운 마음을 안고 찾아가 초콜릿을 건네니 카운터의 직원이 자기는 한 게 없고 찾아준 직원은 따로 있다고 그 직원에게 꼭 전달해 주겠다더라. 그렇게 친절하고 다정한 손길을 여럿 거친 교통카드를 고이 지갑에 모시며 살게 되었다는 게 1월 말에 나에게 일어난 만화 같은 이야기야.

처음 교통카드를 잃어버렸을 때, 떨어뜨린 나의 잘못이 먼저면서도 주워 쓰고 다닌 그 누군가를 많이 미워했어. 주인 좀 찾아주지, 하다못해 떨어진 그곳에 그대로 놔두지! 어떻게 이때다 싶어 막 쓰고 다니냐고. 그러다 두 번째로 떨어뜨렸을 때, 잘 보이는 곳에 카드를 놓아준 부녀를 보면서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있으면 좋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하늘의 계시인가 싶었어. 세 번째 때 나를 찾아준 학생을 보며 사실 좋은 사람, 따스한 순간이 더 가득한 세상이구나 싶었고, 마지막 일이 있고 난 후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이 다정한 직원들처럼 기억되었으면 했어.

정말 다행이면서 운명 같은 건 안 좋은 일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는 거야. 만약 안 좋은 사건이 맨 마지막에 일어났다면, 따스한 순간들은 스쳐 지나가는 일처럼 모두 잊히고 내 안에 그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만 남지 않았을까. 세상에 좋은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나쁜 사람이 꼭 끼어 있다면서 세 번의 다정한 순간에 대한 감사보다 한 번의 무정한 순간에 대한 원망을 안고 살았겠지. 좋은 일만 기억하며 살기에도 짧은 세상이라는 당연한 말이 아쉬운 마음에는 잘 와닿지 않잖아. 그래도 이 엽서를 받는 당신은 이런 말도 안 되게 칠칠찮은 열흘을 보낸 우스운 나를 보며 무정한 순간보다 다정한 순간이 더 생각나는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 분명 당신의 곁에도 카드를 주워가는 사람보다 주워주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테니까!

p.s.

오늘 적어본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던 뒤 얼마 후, 우연한 기회로 ‘스크래퍼’라는 영국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엄마를 잃고 혼자가 된 소녀가 자전거를 훔치며 살아가는 이야기인데 어쩌면 제 교통카드를 주워 몰래 쓰고 다닌 그 누군가도 그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원망한 것이 미안하고 미워하던 마음이 가셨죠. 제 나름대로 그 사람이 제 카드를 쓰며 보냈을 하룻밤의 여정에 대한 귀여운 상상도 하고요. 사연 없는 무정함이 어디 있겠어요. 영상미도 정감 가고 귀엽고 훈훈한 내용에 가볍게 보기 좋은 가족영화라 마음 따뜻해지는 남은 한 주가 되길 바라며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