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순간들이 주는 긍정의 놀라움을 좋아합니다. 이벤트든, 공연이든, 드라마든,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사전 정보 없이 저에게 날아와 딱! 꽂힐 때 말로 표현 못할 희열을 느껴요. (스릴러랑 스포일러는 싫어요!) 운이 좋게 최근에 이런 순간이 네 번이나 찾아왔습니다.

1. 🎠 0303 놀이공원
   봄맞이로 친구들과 홍콩 디즈니랜드에 다녀왔어요. 첫 방문은 아니어서 놀이 기구에 대한 환상은 크게 없었는데, 그중에도 특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 놀이 기구에서 제 놀이공원 인생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도파민 샤워를 맞고 왔습니다. 어린이용으로 보여서 여태껏 한 번도 탄 적이 없었는데 글쎄 엄청-엄청난 반전이 숨어있었지 뭐예요! 상황을 인지한 후에 나오는 비명이 아닌, 순간의 예상 못한 즐거움에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비명은 오랜만이었어요. 조금이라도 이 놀이 기구에 대해 알고 탔다면 제가 느낀 희열의 1/10도 못 느꼈을 것 같아서 독자분들 중에 새로이 경험하게 될 분이 있을 수 있으니 디테일은 생략할게요. (궁금하신 분은 따로 물어봐 주세요. 장문의 경험담을 보내드립니다 😉)
   
   
2. 🍞 0306 퇴근길
   집 냉동실에서 잊혀가던 식빵을 회사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출근하는 동안 해동된 빵을 아침에 구워 먹었을 땐 평범한 빵의 맛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9시간 후 퇴근 직전에 다시 토스터에 넣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온도와 시간을 생각하고 돌린 적이 없었기에, 그날도 대충 손 닿는 대로 200도에 4분 정도를 돌리고 허겁지겁 빵을 집어서 퇴근 버스를 타러 나왔어요. 나오는 길에 아침에 먹었던 맛을 생각하며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이게 웬걸, 겉은 청각을 자극하는 딱 적당한 바사삭함에 속은 인절미 마냥 쪼온득한, 완벽한 식빵이 씹히는 거예요! 퇴근의 신남이 더해져 왜곡된 맛이라 생각하실 수 있지만, 아니에요 이건 달랐어요. 다음날 4분 30초도 5분도 시도해 봤지만, 어쩌다 얻어걸린 그 4분의 맛에 다다르진 못했어요. 의도치 않게 특별해진 수요일의 퇴근길이었습니다.
   
   
3. 🪐 0309 책
   오래 전에 추천 받은 앤디 위어의 SF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드디어 시작해 완독했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우주 이야기인데 재밌다’는 평만 듣고 펼쳤기에 소설의 모든 순간이 저에겐 서프라이즈였어요. 다음 문장이 너무 궁금한데, 실수로 줄을 건너뛰어버리면 김이 샐까봐 손으로 가려가며 읽기도 하고 왜 나의 눈은 이 속도로 밖에 읽지 못하는 건가 답답하기도 했어요. ㅇㅇㅇ(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스포 방지)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육성으로 ‘헉’을 외치기도 했답니다. 🫨 사실 책 소개만 읽었어도 전혀 놀랍지 않을 전개였을텐데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덕분에 배로 몰입할 수 있었어요. 마지막 장까지 저도 우주의 먼지가 되어 긴긴 우주 여행을 함께 떠났다 돌아왔답니다.
   
   
4. 🎸 0309 콘서트장
   고대하고 고대하던 콘서트의 1주 차 공연이 디즈니 봄방학과 겹쳐 2주 차에만 참석하게 되었는데요. 다음에 만날 무대를 모른 채 숨죽여 기다리는 그 찰나의 간지러움을 사랑하는 저는, 한 주 동안 제 알고리즘을 장악한 콘서트 스포일러를 애써 외면해야 하는 힘든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절제된 핸드폰 사용은 물론 (인스타그램 돋보기 탭 금지, 유튜브는 꼭 손으로 가리고 들어가기, 알림도 함부로 클릭 금지, 카톡도 항시 조심 등), 지인들도 단속하고 콘서트장에서도 시작 직전까지 노이즈 캔슬링 된 헤드폰을 끼고 다녔어요. 다시 돌이켜보니 유난이다 싶기도 하지만 😂 그 결과 대형 스포 없이, 더욱 설레는 자체 첫 공연을 즐겼습니다. 그날 아침에 ‘이 노래 다시 콘서트에서 들으려면 몇 년이나 지나야 할까’라고 생각했던, 이번 공연의 세트리스트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Black out>이라는 곡 전주가 콘서트장에서 울리던 순간을 잊지 못해요.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도 못 지르고 입을 틀어막고 황홀함을 만끽하던 장면이 또렷이 남아있어요.

p.s.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영화로도 찾아옵니다. 스파이더맨 유니버스 시리즈의 필 로드 & 크리스토퍼 밀러 감독에, 주인공 역할엔 라이언 고슬링이 출연을 확정했다고 해요. 글로 그려낸 제 머리속 우주가 어떻게 눈 앞에 펼쳐질지 너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우주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책으로든 언젠가 나올 영화로든,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크루가 되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