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는 별것 없었다. 휴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고, 마침 누나가 독일에 있었다. 해외에 나간 지도 어연 8년이 지났다. 회사에서 5년을 채워가는 지금 스스로 숨돌릴 시간을 주기로 했다. 더 고민하며 시간을 끌기 전에 일단 표를 끊었다.
(...) 햇빛에 반짝이는 날개, 구름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 8년 전에도 본 거 같은 비행 인포테인먼트까지. 사소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 이것들을 기록하려고 핸드폰을 바꿨고, 이렇게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영감은 새로운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눈에서 온다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눈이 오기도 하지 않을까? 그 기대를 품고 걸음을 내딛는다.

착륙 후 마주한 소식은 계엄이었다. 낯선 공간에 혼자 남은 긴장감. 부지런히 기차를 타야 하는 조급함. 터전에서 들려온 혼란함과 함께 있지 못한 미안함, 두려움이 뒤섞였다. 우선 현재에 집중하자 다잡으며 상황을 헤쳐나왔다.
외국이 처음 실감 나는 순간은 표지판을 볼 때이다. 어렴풋이 발음만 추측되는 언어들. 같은 의미이지만 사뭇 다른 형태의 기호들. 이런 차이를 받아들이고 나면 다음은 물건으로, 또 사람으로 인식이 확장된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빛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12월부터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마켓의 화려한 조명들. 사람들은 상기된 얼굴로 빛과 시간을 즐기고 있다.

뭐든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이상한 색의 조명을 쏜 건물을 보며 즐거워하는 것도, 몇 번 쓰고 말 크리스마스 장식을 고심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산타가 없다는 걸 들키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도. 지금을 더 의미 있게 만들려는 작은 마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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